제가 울산새언론시민연대(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울산참여연대(현 '울산시민연대')' 정기소식지 < 시민의 힘 >에 2006년 3월부터 [미디어를 알자!] 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입니다. 이 글은 2006년 4월호에 담은 것입니다.

 
지난 3월 한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아래 ‘WBC’) 광풍(狂風)은 말 그대로 ‘미친 바람’이었다. 국가ㆍ민족주의와 스포츠 상업주의는 광고 수입에 목을 맨 지상파 방송 3사들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등에 업고 나타났다 생산적인 그 무엇 하나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사이 방송 3사의 얼굴이라 할 각 방송사들의 메인뉴스는 ‘스포츠뉴스’로 전락했다.

당초 WBC는 방송사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 대회 초반 각 방송사 메인뉴스는 경기의 승패 여부를 리포트 한 건 정도로 간단히 전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대표팀의 연이은 선전은 방송사들에게 ‘시청률ㆍ광고수입 로또’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2라운드(8강전)가 시작되자 방송 3사 메인뉴스들은 연일 야구 얘기를 쏟아냈다. 일본전에서 승리한 16일, MBC 뉴스데스크는 23건을, SBS 8뉴스는 아예 스포츠뉴스까지 흡수시키며 22건을 내놓았다. 광고 수주 고민이 덜했던 KBS 9시 뉴스 역시 14건을 쏟아내며 16일 하루만 59개, 13~19일 1주일간(8강전 기간) 총 263건의 야구 뉴스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런 경향에는 MBC 뉴스데스크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15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8강전 기간 1주일 내내 모두 야구 관련 보도가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8강전 기간 지상파 3사의 야구 보도 263건 가운데 MBC의 그것은 100건이 넘으며 '스포츠 채널'이길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듯 당초 WBC에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던 방송 3사가 사활을 걸며 야구 관련 보도 사상 찾아볼 수 없는 ‘미친 뉴스’를 감행하게 되었는가는 가장 열을 올렸던 MBC의 야구 관련 보도 건수와 시청률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WBC 중계가 없던 3월 둘째주,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9~10% 정도였다. 야구소식을 집중 보도했던 3월 셋째주,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보도 건수에 비례해 가파르게 올라갔다. 23건이라는 막대한 물량공세를 편 16일에는 15.6%까지 뛰어올랐다. 그러나 19일,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바로 다음날부터 MBC 뉴스데스크는 야구 보도를 2건으로 크게 줄였고, 그에 따라 시청률도 WBC 이전보다 못한 6.3%까지 떨어졌다.

무리하게 보도 건수를 늘리려다 보니 같은 내용을 재탕, 삼탕 하거나 함량 미달의 기사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KBS와 MBC는 내용상 차이가 없는 리포트를 억지로 돌리고 또 돌렸다. SBS는 매년 봄이면 의례히 하는 광화문 이순신 동상 물세척 행사를 마치 과거 임진왜란이라도 연상시키는 듯 다음날 있을 한일전과 무리하게 연결시키기까지 했다. 방송 3사 뿐 아니라, 보도전문채널 YTN 뉴스 역시 대표팀의 일본전 승리로 미국의 4강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자,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 대표팀이 포르투갈팀을 격파하면서 미국팀이 16강에 진출하게 된 당시를 회고, 올림픽의 체조 금메달 강탈, 쇼트트랙에서 오노의 헐리우드액션까지 억지로 묶어내며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기도 했다.

WBC 보도로 점철된 메인뉴스까지 동원해 ‘미친 바람’을 만들어내느라 여념 없는 방송사의 모습을 지적하는 이유는 국민의 재산인 전파의 낭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나 스포츠 상업주의와 시청률 지상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에만 머무는 게 아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3주년을 맞아 확산되고 있는 전세계적 반전 움직임,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준 새만금 방조제 최종 판결이라든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첨예화하는 갈등양상 등 국제ㆍ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회적 의제들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짤막한 단신으로만 처리됐다.

야구 열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3월 16일, 미군기지 확장이전 예정지인 평택 대추리에서는 계속 농사를 짓게 해달라는 농민들과 이전을 강행하는 국방부가 중장비를 동원해가며 충돌하고 있었다. 같은 날,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4년 7개월의 긴 공방이 간척사업 재개라는 정부의 승소로 종지부를 찍으면서, 대다수 언론들은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전망을 분석기사와 함께 자세히 전했다. 그 날 밤 TV를 마주하며 향후 파장에 대한 보도와 지역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난 TV 뉴스가 끝나는 내내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 되어 버렸다. 평택 대추리 소식은 방송 3사중 SBS의 보도 1건으로 끝났고, 이전까지 초미의 관심사였던 새만금 최종 판결 보도는 야구 소식에 어느 방송사할 것 없이 뒷전으로 밀렸다. 이 밖에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 3년째를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50개국, 4백여개 도시에서 공동으로 개최된 대규모 반전행사는 방송 3사의 뉴스에서는 외면되다시피 했다. MBC만이 짤막한 외신으로 다뤘지만, 국내 움직임은 아예 보도꺼리조차 되지 못했다.

이런 파행적 보도행태에 대해 방송사 내부에서조차 비난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MBC 스포츠부문 기자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시청자들이 야구 뉴스의 홍수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SBS ‘성한표의 뉴스비평’에서는 스포츠의 상업성에 눈먼 보도행태를 성토하기도 했지만, 각 방송사 보도국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은 듯 했다.

WBC 뿐 아니라, 본디 스포츠 이벤트의 흥행과 시청률, 그리고 광고수익 간에는 깊은 함수관계가 존재한다. 19일 준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세번째 대결은 야구 중계사상 처음으로 방송 3사에서 모두 중계됐다. WBC 지상파 단독 중계권을 갖고 있던 KBS와, 이를 재구매하던 MBC. SBS간에 한일 4강전 중계를 놓고 법정공방까지 간 끝에 결국 공동중계로 결론이 났다.

방송사들이 이번 중계에 얼마나 목을 맸는지는 19일 준결승에서까지 승리했다면 우리 모두는 TV화면을 통해 하루 종일 야구 관련 보도와 온갖 이름 죄다 갖다 봍인 야구 관련 특집방송만을 보다 지쳐 잠들어야 했을 것이다. 한 예로 MBC의 경우, 모두 6개의 대형 특집방송들을 준비됐다. 이 특집들은 오전 9시 직전부터 시작돼 밤 11시 30분까지 계속되도록 편성됐다. 14시간 넘도록 계속해서 시청자들의 눈을 야구에만 붙들어두겠다는 계획이었다. 특히 뉴스데스크의 경우, 한 시간 일찍 시작해서 두 시간 가까이 편성되기도 했다.

MBC의 이렇듯 무모하리만치 ‘미친 편성’은 결국 시청률과 그에 따라오는 광고수익 때문이다. 지난 19일 (일요일) 한일 4강전 중계의 경우, 앞뒤에 붙은 특집프로그램을 합쳐서 각 방송사는 대략 7억 5천만원 정도의 광고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MBC는 3시간짜리 특집쇼를 편성하면서 7억 5천만원 그 이상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정됐다. 당초 KBS가 단독중계로 얻을 것이라 예상됐던 수익은 12억 5천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MBC와 SBS가 가세하면서 전체 광고비는 모두 22억 5천만원이 넘는 액수로 실제 배 이상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KBS 미디어포커스 『이슈와 비평』 2006년 3월 25일 토요일 방송분 참고).

방송 3사가 국제ㆍ사회적 현안들을 깡그리 무시하면서까지 ‘미친 바람’을 일으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전체 파이가 커지면서 광고시장도 함께 커진다. 기업들이 굳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막대한 액수의 광고홍보비용을 지출하면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설비나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할 돈의 일부마저 광고비로 돌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광고비 상승의 결과는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거나, 궁극적으로 소비자, 즉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며 물가상승을 주도할 것이 뻔하다. 그야말로 우리 시청자들은 국제ㆍ사회적 현안들에는 눈과 귀를 닫게 된 상태에서 스스로의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놓는 ‘바보’로 전락해 버린다. TV를 ‘바보상자’ 라 일컫는 건 그 때문일까?

방송 3사의 WBC 보도 경쟁은 지난 한일 월드컵을 통해 얻은 학습효과가 기형적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다. 지난 3월 1일, 방송 3사들은 3.1절 관련 소식 대신 100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특집을 거의 하루 종일 내보냈다. 이 날 열린 앙골라와의 축구경기도 방송 3사가 모두 중계했다. 이 때문에 독일 월드컵 전에 치러질 4차례의 국내외 평가전도 자칫하면 3사가 모두 중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전파 낭비는 불을 보듯 빤한 상황이다. 각 방송사들은 오는 6월 7일부터 시작되는 독일 월드컵 방송을 위해 각 방송사별 70명 안팎의 대규모 특별취재단을 이미 구성했다고 한다. 대표팀의 숙소가 마련될 독일 쾰른을 중심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한 달 동안 현지에서 뉴스를 진행하고, 주요 경기 생중계를 하며, 월드컵 특별방송을 하는데 쏟아 붓고 있을 인적ㆍ물적 자원은 분명 도가 넘어도 한참을 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막대한 자원이 그간 주요 언론들의 외면을 받아온 국제ㆍ사회적 의제들을 심도 있게 짚어내며 우리 민중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쓰인다면 해법도 없이 갈등의 골만 깊어가는 비정규직 문제, 사회 양극화 문제 등도 벌써 그 해결방안에 한걸음 다가서지 않았겠는가. 우리 시민사회가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언론까지도 감시의 대상에 두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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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음(異音)


제가 울산새언론시민연대(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울산참여연대(현 '울산시민연대')' 정기소식지 < 시민의 힘 >에 2006년 3월부터 [미디어를 알자!] 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입니다. 이 글은 2006년 3월호에 담은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사회적 의제 대부분은 언론ㆍ미디어를 거쳐서 삽시간에 증폭ㆍ확산된다.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들은 이제 양적 측면에서 '범람'의 지경을 넘어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 정치의 무대에서든 시민운동판에서든 언론ㆍ미디어가 가진 파괴력 때문에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른바 '언론플레이'라는 게 당연시 되는 추세다.
 
'언론플레이'... 언론과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을 이용한다는 측면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그들의 영향력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들에 대해서는 진지한 성찰이 뒤따르지 못하게 된다. 최근 황우석 사태를 둘러싸고 진행된 일부 언론들의 보도행태와 몇몇 보수ㆍ수구언론들의 보도에 휘둘려진 국민들의 지나친 황우석 사랑과 애국주의는 결국 온 사회를 '집단적 패닉'의 지경으로 몰고 말았다. 사회적 의제들을 깊이 있게 성찰할 역량은 물론 의지조차 없는 우리 언론들이 만들어낸 '싸구려 저널리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네 언론, 특히나 보수ㆍ수구언론들에게서 반성과 성찰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권력과 자본의 변두리를 맴돌며 때로는 권력ㆍ자본과 모종의 '거래'를 맺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구린 곳을 물고 늘어지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언론플레이'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네 언론들이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파문에서도 암묵적 '거래'와 어설픈 '협박'의 앙상블을 선보였다.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이 동아일보의 어느 기자에 성추행을 저질렀음은 본인조차도 차마 부인하지 못했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사건이 결국 최연희의 성추행 파문에 '물타기'의 꺼리를 던져주고 말았다. 다름 아닌 이해찬 국무총리의 '3ㆍ1절 골프 파문'이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중심축이면서 유독 한나라당과는 날을 세워왔던 이해찬 국무총리의 '남다른 골프 사랑'과 승승장구해오던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순식간에 5%씩이나 갈아먹어버린 최연희 의원의 '괴상한 시력 장애'를 놓고 벌어지는 사퇴 공방은 이 둘이 저지른 과오의 본질과 그에 도사리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차근차근 들여다볼 틈을 주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5.31 지방선거와 차기 대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야간 정쟁의 하수구에 코를 처박히고 말았다. 물론 국민들이 정쟁의 구린 냄새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버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자처하는 작자들이 바로 우리네 언론들이다. 특히나 보수ㆍ수구꼴통 언론들이다.
 
보수ㆍ수구언론들의 깜찍한 '언론플레이'에 우리 국민들이 간과한 또 하나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최연희 의원이 '착시현상'을 몸소 체험하셨다는 그 날 그 자리에 대한민국의 유력언론임을 자부하는 동아일보의 기자 14분께서는 제1야당이자 수권정당임을 자부하는 한나라당의 당직자들과 폭탄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시면서 "질펀한 간담회"를 가지셨다 한다. '여성 도우미'의 시중을 포함해 1인당 14만원에 이르는 저녁식사와 함께 2차 술자리까지 이어지는 수백만원대의 향응을 기꺼이 받아 잡수신 동아일보 기자들에게서 여성 인권 문제의 뒤편에 슬쩍 몸통을 감춘 권언유착에 대해 낱낱이 고해성사해주십사 읍소하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리라.
 
출입기자제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취재원에 대한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권언간 '뒷거래'가 오가는 현실 앞에서 우리 사회 진보의 첫걸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을 말끔히 세탁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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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음(異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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